“아이들은 잘 적응하더라. 문제는 나였다.”
1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글을 씁니다.
그때는 쓸 수가 없었어요. 뭘 느끼는지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아니, 알았는지도 몰라요. 그냥 인정하기 싫었던 걸 수도 있어요.
남편이 출근하고, 문이 닫혔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어요.
남편이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닫고 나갔어요. 딸깍 —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어요.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었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캘리포니아 햇살은 눈부시게 맑았고, 낯선 집 안은 조용했어요.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15년이었어요. 대학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가서, 재무팀에서 숫자와 씨름하며 살았던 시간이 15년. 바쁜 게 일상이었고, 해야 할 일이 늘 쌓여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존재했어요.
근데 그날 아침, 처음으로 아무것도 없었어요.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나를 기다리는 업무도.
그 자유가 반가울 줄 알았는데, 막상 맞닥뜨리니 공허했어요.
아이들은 잘 적응했다. 문제는 나였다
솔직히 처음엔 자책하지 않았어요. “새로운 곳, 새로운 마음, 새롭게 시작하자” — 그 다짐이 진심이었거든요.
아이들 영어를 따로 준비 못 했으니 적응시키는 게 최우선이었어요. 학교 보내고, 선생님이랑 소통하고, 방과 후에 같이 공부하고. 그게 내 일이었고, 그걸 하면서 나는 괜찮은 척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아이들은 적응했어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어느 날 보니 친구들이랑 영어로 웃고 떠들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여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나만 빼고요.
이참에 영어 좀 해볼까, 했는데
사실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꿈은 없었어요. 다만 마음 한쪽에 늘 걸려있는 게 있었어요.
대학 때 해외연수를 한 번도 못 갔거든요. 친구들이 다녀오는 걸 보면서 “나는 왜 못 갔지, 그래서 영어가 안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어요. 딱히 열등감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냥 뭔가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
주변에서 이런 말도 들었어요. “덕을 쌓아야 주재원 와이프 한다” 고. 좋은 거라고, 부러운 거라고. 그 말들을 들으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좋은 거지. 감사한 거지.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오게 됐을 때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참에 영어 제대로 해보자. 이제 기회잖아.”
근데 막상 혼자 있으니까 영어 쓸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마트 계산은 카드 꽂으면 되고, 주문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되고.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의지의 문제였나, 아니면 처음부터 내 안의 문제였나 싶었어요.
휴직 기간이니까 아이들한테 집중하자. 그건 맞는 말이었어요.
근데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나면, 그 긴 오전이 오롯이 나한테 남았어요.
나는 여기서 뭐하는 건가. 뭘 해야 하지.
허망하다는 말이 딱 맞았어요. 채워지지 않는 뭔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 감각. 슬프다고 하기엔 이유가 없고, 괜찮다고 하기엔 뭔가 아팠어요.
하루 한 가지
그러다 블로그를 알게 됐어요.
처음엔 그냥 읽기만 했어요.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쓴 글들. “맞아, 나도 그랬어” 싶은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덜 외로웠어요.
그러다 나도 써봤어요.
그리고 한 가지를 정했어요. 오늘 하루 딱 한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 블로그 글 한 편 쓰기, 동네 카페 한 군데 가보기, 새 단어 다섯 개 외우기. 거창한 거 없이, 그냥 딱 하나.
그걸 해냈을 때의 기분이 —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15년 직장 생활 동안 수백 개의 보고서를 썼는데, 블로그 글 하나 올리고 “해냈다” 는 느낌이 드는 게 좀 우습기도 했어요. 근데 그게 진짜였어요.
1년이 지난 지금
지금도 가끔 그 아침 같은 기분이 와요. 문이 닫히고, 집이 조용해지고, 나는 여기서 뭐하는 건가 싶은 그 기분.
근데 이제는 그 기분이 오면, 노트북을 펴요.
그때의 나를 위해, 지금 이 글을 써요. 그리고 어쩌면 지금 그 아침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도요.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옆에서, 혼자 허전한 게 당연해요. 그 외로움은 나약함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는 거예요.
📝 Julia Heart Note
적응 못 하는 게 아니에요. 아직 나를 찾는 중인 거예요. 그 시간도 결국 나를 만드는 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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