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렇게 편지를 쓰면 어디선가 읽고 계실 것 같아서, 오늘도 “아빠”라고 불러봐요.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슬픔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만큼은 잠깐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던 날 같다가도, 곧 “아, 아빠가 이제 안 계시지” 하는 현실이 조용히 찾아와요. 그 짧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저를 무너뜨려요.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정신없이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캐리어를 챙기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내내 마음속엔 하나의 생각뿐이었어요. ‘가면 아빠 손은 잡을 수 있겠지.’ 공항에 도착했을 무렵 다행히 상태가 조금 호전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말을 얼마나 붙잡고 있었는지 몰라요. 그래, 가면 된다. 아빠한테 “나 왔어” 하면 된다. 그 생각 하나로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런데 아빠, 가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늘 위에서 저는 그 소식을 들었어요. 창밖에는 끝없이 구름만 보이는데 저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어요. 옆에서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고, 저는 그 작은 숨소리 사이에서 소리도 못 내고 조용히 울기만 했어요. 지금 당장 이 비행기에서 내려 아빠한테 달려가고 싶은데, 하늘 위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몇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길고 무서운 시간이었어요.
나중에야 들었어요. 아빠가 심정지를 여덟 번이나 견디셨다는 이야기를요. 다들 막내딸을 기다리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위로가 되기보다는 마음이 더 미어졌어요. 저 하나 보시려고 그 고통을 여덟 번이나 견디셨다는 생각에요. 조금만 더 빨랐으면. 조금만 더 가까이 살았으면. 조금만 더 일찍 출발했으면. 이 ‘조금만’이라는 말이 아직도 제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아요.
장례식장에서 아빠 친구분들은 이렇게 싱겁게 가는 친구가 어디 있냐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또 어떤 분은 엄마랑 딸들 고생 안 시키려고 오래 앓지 않고 가신 것 같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우리 힘든 거 못 보던 아빠였으니 머리로는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아빠,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랐던 건 제 욕심이었을까요.
장례를 치르면서 저는 제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아빠를 만났어요. 조문객 한 분 한 분이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어요. 아빠는 돈이 없어서 공부를 그만두는 걸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잖아요.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조용히 교복을 사주셨던 일, 운동화를 신지 못하는 아이에게 아무 말 없이 운동화를 건네셨던 일, 조카에게 책가방을 사주셨던 일. 그 이야기를 하시며 다들 한참을 우셨어요. 아빠는 집에서는 그런 말 한 번도 안 하셨잖아요. 저는 그날 처음 알았어요. 우리 아빠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생을 조용히, 티 안 내고 붙잡아 주셨는지를요. 교복 한 벌, 운동화 한 켤레, 책가방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게 해준 손길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따뜻한 분이 우리 아빠였어요. 저는 그런 아빠의 딸이라는 게 참 자랑스러워요.
대학 때 서울로 올라와서 학교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렇게 정신없이 사는 동안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당연히 계실 줄만 알았어요. 언제든 전화하면 받을 것 같았고, 다음 명절에 만나면 될 것 같았고, 다음 휴가에 효도하면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다음’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쉽게 끝날 수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됐어요.
가시기 일주일도 안 남았을 때, 우리 통화했던 거 기억나세요. 미국행 비행기표 보내드릴 테니 빨리 오시라고, 며칠로 하면 좋겠냐고 제가 물었잖아요. 아빠도 손주들 학교 다니는 모습 보고 싶다고, 딸 사는 곳 구경하고 싶다고 설레어 하셨잖아요.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햇살도 함께 걷고 싶었고, 우리 집 식탁에서 제가 끓인 된장찌개도 꼭 드시게 하고 싶었어요. 그게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어요. 시간은 아직 많이 남은 줄 알았으니까요. 끝내 미국 하늘 한번 보여드리지 못한 게 제일 큰 한으로 남아요.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에게도 미루지 않으려고 해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안아주는 것도, 함께 밥을 먹는 것도요. 아빠를 보내드리고 나서야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게 됐어요.
그리고 손녀, 손자 엄마 아빠가 키워주셨잖아요 너무 감사했어요. 아빠 돌아가시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는데 일하느라 아빠에게 애들 맡긴 저에게
아이들 크는거 보여주신다고 사진이나 동영상 많이 보내주셨잖아요 그 속에 아빠가 있어서… 아빠 모습을 볼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제가 그때 감사함을 더 표현할껄… 아빠가 저한테 준 사랑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셔서 아이들도 할아버지가 하늘 나라 가서
많이 슬퍼하고 많이 울었어요… 또 많이 그리워하고 있어요…
아빠, 먼 곳에 있어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은 아마 평생 제 마음에 남을 거예요. 그래도 한 가지는 믿고 싶어요. 몸은 비록 떨어져 있었어도, 아빠에게 달려가고 있던 막내딸의 마음만큼은 아빠도 분명 느끼고 계셨을 거라고요. 그리고 아빠의 딸로 살아온 시간은 제게 가장 큰 감사이자 자부심이에요. 아빠가 주신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으니까요.
이제는 아프지 마시고, 심장이 멈추던 그 모든 고통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쉬세요. 엄마는 저희가 잘 지킬게요. 손주들도 건강하게 잘 키울게요. 아빠가 걱정하지 않도록 씩씩하게 살아볼게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에는, 이번에는 제가 꼭 먼저 달려가 아빠 손을 잡고 안아드릴게요.
사랑해요, 아빠. 정말 많이 사랑했고, 지금도 많이 사랑해요.
막내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