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재원 와이프로 보낸 1년 _ 잃은 것과 비로소 얻은 것들

“커리어를 멈추고, 캘리포니아에서 나를 다시 쓰는 시간”

안녕하세요, Julia입니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 낯선 공기를 마시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회사생활 15년. 쉼 없이 달려온 제가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400일. 오늘은 그동안 잃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해 솔직하게 기록해보려 해요.

잃은 것들 — 익숙했던 정체성과의 작별

커리어를 잃었어요.

재무팀에서 회사를 분석하고 자금운용을 계획하며 숫자로 나를 증명하던 일상이 멈췄어요. 한국에서는 직함이 있었고, 책임이 있었고, 매달 통장에 월급이 찍히는 사람이었어요. 그게 나라고 생각했어요.

이곳에선 아무도 제 경력을 묻지 않아요.

동기들 승진 소식이 카톡으로 날아올 때 — 진심으로 잘됐다고 생각해요. 근데 동시에 묘한 감정이 와요. 예전엔 같은 선상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의 일상이 너무 달라진 것 같은 그 느낌이요. 상실이라기보다 — 나를 설명하던 가장 큰 명함이 사라진 데서 오는 낯선 감각이었어요.

언제든 기댈 수 있었던 관계망을 잃었어요.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회사 다니면서 아이 키우다 보면 친구들을 자주 만나진 못했어요. 그래도 가끔 연락하고, 밥 한번 먹으면 됐어요. 근데 미국에 오고 나서는 시차가 생기고, 각자의 일상 속도가 달라지니까 — 연락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겨요. 그 차이가 조용히 마음에 걸려요.

친정 식구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회사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이랑 언니들 덕분이에요. 아이가 아프면 달려와 주시고, 야근이 길어지면 아이를 봐주시고 —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당연했던 도움이 얼마나 큰 특권이었는지, 여기 와서야 더 크게 느껴요.

지금 제일 바라는 건 하나예요. 부모님이 건강하셨으면, 무탈하셨으면 하는 것. 멀리 있으니까 그 바람이 더 간절해지더라고요.

얻은 것들 — 비로소 채워진 새로운 것들

아이들에게 ‘빨리’ 없는 아침을 선물했어요.

한국에서의 아침은 늘 전쟁이었어요. 출근 시간에 쫓겨 아이들이 조금만 늦장을 부려도 그게 나한테 그대로 압박이 됐어요. 짜증을 낸 날 퇴근길 죄책감이 쌓이고, 그게 또 다음 날 아침으로 이어졌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좀 느려도 괜찮아요. ‘빨리’가 줄었어요.

그리고 캘리포니아 날씨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미세먼지가 없어요. 한국에 있을 때 봄이 오면 제일 먼저 확인하던 게 미세먼지 수치였는데 — 여기선 아이들이 그냥 나가서 뛰어요. 날씨 걱정 없이요. 그게 매일 보이는데, 마음이 편해져요.

나 자신과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하고 있어요.

살면서 초중고, 대학교, 취업, 결혼, 아이를 낳고 —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단 한 번도 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어요. 주어진 환경에서 잘 살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렸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어요.

미국에 와서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어요. 처음엔 그 시간이 무겁고 불안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근데 조금씩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걸 먹고, 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어떤 경험이 나를 더 채워줄지 — 몸으로 직접 겪어보고 눈에 담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휴직 기간을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닌, 내 인생의 지평을 넓히는 투자 구간으로 정의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에요.

그리고 byjulia라는 새로운 시작이 생겼어요.

직장 다닐 때는 시도조차 못 했을 일을 시작했어요. 블로그예요. 나의 회사생활의 경험이 글이 되고, 주재원 아내의 현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됐어요.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걸 — 여기 오기 전엔 몰랐어요. 명함이 없어도 내가 빛날 수 있다는 걸, 이 블로그가 조금씩 보여주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내가 나를 위해서 나의 시간을 기록하고 내가 직접 공부하고 경험한 것들을 남겨 보는거요.

📝 Julia Life Note

“비워내야 비로소 채워지는 것들이 있어요.”

커리어를 내려놓고, 익숙한 이들을 떠나온 빈자리에 새로운 제가 들어왔어요. 1년 전의 저라면 시도조차 못 했을 일들을 하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어요. 잃은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 그 빈자리를 어떤 새로운 경험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지금이 참 소중해요. 미국 생활 2년 차, 저는 이제 더 건강하고 선명한 저만의 문장을 써나가려 해요.

🔗 함께 보면 좋은 글

#미국주재원와이프#경력단절#캘리포니아일상#엄마의성장#재무팀#경영지원팀#미국생활1년후기#마음챙김#주재원아내현실#byjuliajy

2 thoughts on “미국 주재원 와이프로 보낸 1년 _ 잃은 것과 비로소 얻은 것들”

  1. Pingback: 오후 두 시의 기록 06. 다시 엑셀을 켜다 - Damda

  2. Pingback: 오후 두 시의 기록 07. 이번 달 마음의 기록 - By Julia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