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내가 가장 자주 여는 앱
요즘 제 핸드폰에서 가장 자주 열어보는 앱은
뱅킹 앱도, 주식 앱도 아닙니다.
딸아이의 성적 페이지입니다.
미국 학교는 참 솔직합니다.
GPA, 과제 제출 여부, 코멘트까지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됩니다.
숫자는 빠르고,
부모의 심장은 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합니다.

2. 화면에 뜬 ‘Missing’이라는 단어
14년 동안 숫자를 다뤘습니다.
회사에서 ‘누락’과 ‘오류’를 찾는 것이 일이었죠.
그래서일까요.
성적 페이지에
“Missing”이라는 단어가 뜨는 순간
제 안의 디렉터 본능이 먼저 반응합니다.
“왜 제출 안 했니?”
“여기서 왜 점수가 낮지?”
잔소리가 목까지 차오릅니다.
숫자는 개선해야 할 대상처럼 보이니까요.
3. 하지만 GPA는 과정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이 GPA가 찍히기까지
딸아이가 낯선 영어 표현과 씨름하며 보낸 시간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미국 생활 1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며 겪는 성장통은
그 숫자에 포함되어 있을까.
재무적으로 말하면
GPA는 결과표입니다.
하지만
성장은 현금흐름표처럼
매일매일의 움직임 안에 숨어 있습니다.
숫자는 결과일 뿐,
과정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4. 잔소리 대신 선택한 것
예전의 저는
문제를 바로 수정하려 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선택합니다.
“이번엔 뭐가 어려웠어?”
“다음엔 어떻게 해볼까?”
잔소리 대신 질문.
지적 대신 대화.
인생이라는 장기적인 대차대조표에서
지금의 작은 Dip은
결코 위기가 아니니까요.
5. 내가 가르치고 싶은 건 점수가 아니다
저는 딸아이가
완벽한 GPA를 받길 바라기보다
숫자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배우길 바랍니다.
점수가 내려가도
스스로 다시 세울 수 있는 힘.
비교 대신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는 감각.
결국
제가 삼키는 잔소리는
성적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을 위한 선택입니다.
오늘도 업데이트 알람이 울립니다.
저는 한 번 더 깊게 숨을 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고생했어.”
그 한마디가
지금은 어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기록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