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모른 채로 오후 두시를 보내고 있어요”
이 고민이 처음 찾아온 건,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오후였어요.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하고, 커피 한 잔 내려서 창가에 앉아 있었어요. 팜트리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조금 불고, 이웃 집 잔디에서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 조용한 풍경을 보다가 — 갑자기 그 질문이 왔어요.
우리, 결국 돌아가는 건가?
“3~5년 있다 돌아가시겠네요”
주재원이라고 하면 거의 반드시 나오는 반응이에요.
학교 학부모 모임에서도,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심지어 처음 만난 한국 분들과 이야기할 때도 — 자연스럽게 그 말이 나와요. “아, 그럼 3~5년 후에 돌아가시겠네요.”
처음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어요. 틀린 말이 아니니까요. 발령이 나면 기간이 있고, 그 기간이 끝나면 돌아가는 게 원래 계획이니까요.
근데 어느 날부터 그 말이 조금씩 걸리기 시작했어요.
정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건가? 그게 내가 원하는 건가? 남편이 원하는 건가? 아이들한테 맞는 건가? 하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어요. 답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 막상 혼자 앉아서 들여다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귀국을 생각할 때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생각하면 분명히 당기는 것들이 있어요.
부모님이 거기 계세요. 가까운 곳에 살면 주말에 얼굴 볼 수 있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라는 걸 볼 수 있어요. 여기 와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거거든요. 명절에 영상통화로 얼굴 보고, 아이들 생일에 할머니가 못 오시고 — 그 장면들이 쌓일수록 마음 한쪽이 무거워요.
친구들도 거기 있어요. 오랫동안 같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들. 여기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있지만, 한국 친구들과의 그 깊이는 또 달라요. 갑자기 보고 싶은 날이 있어요.
그리고 아플때 고민 1도 안하고 병원으로 직행할수 있고 검사도 맘 편히 다 받을 수 있고 언어도 편하고 생활도 편하고…
잔류를 생각할 때 — 아이들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제가 잔류를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에요.
지금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가 4학년이에요. 8월이 되면 7학년, 5학년이 돼요. 여기서 보낸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영어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친구들이 생기고, 선생님이랑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학교 생활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어요.
지금 돌아가면 이 흐름이 끊겨요.
한국 교육 시스템은 완전히 달라요. 미국에서 쌓아온 커리큘럼이 한국 교과과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고, 아이들은 또다시 적응을 시작해야 해요. 한국어로 수업 듣고, 한국식 시험을 준비하고, 새 학교에 새 친구를 만들어야 해요. 그 과정이 아이들한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 결정이 더 무거워요.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어요. 한국 대입이에요.
지금 6학년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대입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돼요. 미국에서 보낸 시간이 그 레이스 안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 아직 그림이 잘 안 그려져요. 잘 활용하면 강점이 되지만, 준비 없이 돌아가면 공백이 될 수도 있어요. 그 두려움이 있어요.
그렇다고 미국에서 계속 살면 미국 교육 시스템으로 가야 하고, 그럼 그것대로 다른 준비가 필요해요. 어느 방향으로 가든 선택이 필요한데 — 아직 그 선택을 못 하고 있는 거예요.
남는다면 — 영주권이라는 현실
잔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면 바로 마주치는 게 있어요. 비자 문제예요.
미국에 남고 싶다고 해서 비자 없이 남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깐요
주재원 신분으로 있을 수 있는 기간에는 한계가 있어요. 남겠다는 결정을 하려면 결국 영주권을 고민해야 해요. 그리고 영주권을 신청한다는 건 — 남편이 지금 다니는 한국 회사와 정말로 헤어진다는 뜻이에요. 주재원 발령 자체가 한국 본사 소속이기 때문에, 영주권을 취득하면 그 관계는 끝이에요.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이게 생각보다 훨씬 큰 결정이에요.
영주권의 장점을 솔직하게 말하면 — 비자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요. 아이들이 여기서 대학을 가도 in-state 학비 혜택이 가능하고, 취업도 자유로워요. 남편도 한국 회사에 묶이지 않고 미국에서 더 넓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생활 자체가 안정돼요.
단점도 솔직하게 말하면 — 한국에 돌아가는 게 훨씬 복잡해져요. 한국에서의 세금, 금융 자산 관리가 달라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결정을 하는 순간 “언젠간 돌아가겠지” 라는 선택지가 사라지는 느낌이 있어요. 열어두었던 문을 닫는 것 같은 감각. 그게 꽤 크게 느껴져요.
남편이 한국 회사를 포기하고 여기에 남는다는 게 — 우리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이야기를 아직 충분히 하지 못한 것 같아요.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귀국을 생각할 때 아이들 걱정만큼 저 자신에 대한 걱정도 있어요.
저는 지금 경력단절 상태예요. 육아휴직으로 여기 왔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직장과의 거리가 멀어졌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복직이 가능한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 — 이것도 안개 속에 있어요.
근데 더 솔직한 걱정은 따로 있어요.
내 나이면 한국에서 이미 다들 퇴사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만 멈춰있다가 다시 들어가려는 것 같은 불안. “내가 이 속도에 다시 맞출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자꾸 올라와요.
여기서 블로그를 쓰고, 1인 법인을 만들고,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는데 —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들 적응, 나의 적응, 남편의 적응이 동시에 시작돼요. 또다시 적응의 둘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솔직히 무거워요. 한 번 했으니까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에너지를 다시 꺼내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해요.
한국에서 오래 일하면서 쌓아온 경력이 여기선 쉽게 증명이 안 되고, 여기서 새로 쌓은 것들이 한국에선 낯설게 보일 수 있어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어요.

정답 없는 고민을 안고 오후 두 시를 보낸다
경력단절과 화해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듯이, 이 질문과 화해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결론을 빨리 내려야 한다는 압박보다 —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솔직하게 보는 것. 그게 순서인 것 같아요. 물론 말로는 그렇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 뭘 선택하는게 좋은건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한 가지는 알아요. 결정을 오래 미룰수록 아이들 시간이 먼저 간다는 것. 귀국할 계획이라면 지금부터 커리큘럼을 맞춰야 하고, 남을 계획이라면 지금부터 뿌리를 더 단단히 내려야 해요. 그 사실이 자꾸 떠올라서, 이 고민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오늘도 오후 두 시예요. 스프링클러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고, 팜트리는 바람에 조금 흔들리고 있어요. 저는 아직 그 창가에 앉아, 답을 찾고 있어요.
한편으로 어쩌면 이런 고민 조차도 행복한 순간 일수도 있을꺼같아요.. 비자 연장 없이 당장 복귀 하라고 할수도 있는 현실이니깐요…
혹시라도 이런 고민을 혼자 안고 있는 분이 있다면 — 이상한 게 아니에요. 저도 그러니까요.
📝 Julia Heart Note
“귀국할까, 남을까 — 이 고민이 무겁다는 건, 그만큼 삶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이들 교육, 영주권, 커리어, 적응.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어요. 정답을 모른 채로 오후 두 시를 보내는 것 — 그것도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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